스마트(smart)한 바보(fachidiot)들의 시대
저는 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닙니다.
당연하게도 차가 없기 때문이지만, 버스보다도 지하철을 타는걸 좋아합니다.
운동 삼아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고 지하철이 버스보단 덜 흔들리고 조용해 책도 잘 읽히죠.
무엇보다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바쁘게 움직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다들 피곤하고 무표정해보이긴 해도,
매일같이 다양한 얼굴들을 볼 수 있다는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거든요.
옷차림에서부터 말투, 그리고 읽고 있는 책까지..
유심히 살펴보면 그 분의 성격과 직업까지 알 수 있을듯 하기에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어떤분이고 상관없이 각자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스마트 폰의 모습입니다.. 눈에 익으시죠? 요새는 거의 모든 분들이 저 스마트 폰을 사용하시더라구요. 사진의 경우는 소설을 보고 있지만 동영상을 보시는 분, SNS를 이용하시는 분, 업무처리하시는 분 등등 참으로 다양하게 사용하시더랍니다. 정작 이렇게 글을 쓴 저는 없지만..>
사진 출처 - 매일신문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974&yy=2010)
사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가리켜 우리가 스마트(smart)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최근엔 스마트 폰 유저가 무려 1000만이 넘었다고 하네요.
스마트 시대란 단순히 스마트 폰 유저가 늘어난 현상을 표현하는 말은 아니라고 합니다.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변했다 하더군요. 실시간 SNS(트위터,페이스북 등) 이용은 물론, 모르는 곳을 찾게 하고(위치 기반 서비스), TV에서 보던 프로그램을 이어서 볼수 있으며(N스크린 서비스), 심지어는 업무까지 스마트폰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변화라 할 수 있겠죠. 이 외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스마트 라이프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에서도 스마트 시대에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 5명 중 1명 스마트 폰 쓴다."(전자신문), "스마트 TV 본격 성장세"(디지털타임즈), "스마트 폰 TV와 일심동체 된다"(한국일보) "퇴근길 스마트폰 영화, 안방 TV서 이어보니 편리하네"(중앙일보), "스마트폰 미래가 달렸다... 이동3사, 황금주파수에 사활건 승부"(SBS CNBC 경제), "현대 기아차, 자동차-스마트폰 연동기술 개발 나선다"(재경일보) 등등..
스마트 폰이 워낙 많은 변화를 가져오다 보니, 언론에선 이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무진장 애쓰는 것 같습니다. 모든 변화들은 사회 전체로 넓고 빠르게 번져가고 있구요.. 이걸 모든 부분에서 한꺼번에 이야기 해드리긴 힘들것 같습니다.
다만 사회과학을 좋아하는 잉여인 제가 봤을 때 핵심은 아무래도 이용자의 미디어 생활환경 변화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과거에도 휴대폰을 통한 DMB나 각종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있었습니다만, 스마트 폰 시대에 들어오면서 엄청난 차이가 생겨나게됩니다. 일단 인터넷 네트워크 자체가 원하는 정보와 서비스를 찾을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자나요? 그게 스마트 폰 환경으로 옮겨와 일상생활과 훨씬 가까워진 것이죠. 또한 오픈소스(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소스를 공개하는 것) 어플리케이션을 바탕으로 이용자가 능력만 된다면 어플을 직접 만들어 팔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즉 과거엔 공급자들이 제공해준 서비스만 일방적으로 받아야 했던 이용자들이, 이제는 원하는 서비스만을 찾아서 이용하고 스스로 공급자까지 될 수 있는 상황이 된것입니다. 이는 공급자와 이용자간 쌍방향성을 심화시키면서 산업계의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옵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와 친숙한 TV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 김갑수 아저씨가 계속 죽는 광고를 보셨나요? 그게 바로 'N스크린'이라는 서비스 광고입니다. 기존 TV에서 보던 프로그램을 별도의 다운로드나 기기로 옮기는 작업 없이 바로 이어서 볼수 있는 서비스라네요. 뿐 만아니라 최근들어 TV와 다양한 스마트 기기들이 연동할 수 있는 서비스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즉, 앞으론 우리가 더 이상 기존 방송사 편성표에 맞춰서 TV 앞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자신이 이용하고 싶은 매체에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대에 볼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미디어 개인 공간이 크게 늘어난다는 의미죠. 앞으론 뉴스 보려는 아빠와 드라마 보려는 엄마, 만화 보려는 동생들과 집에서 리모콘 가지고 서로 싸울 필요가 없을 겁니다.
TV 뿐만 아니라 모든 미디어 개인 공간들이 늘어나는 스마트 시대.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더욱 다양하게 나뉘어질겁니다. 서로 각자의 관심 분야에서, 각자의 매체를 통해, 각자의 정보를 파고 드는 것에 최적화된 환경이니까요. SNS와 결합으로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더욱 잘 모이고 흩어질 수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다양하게 나눠질 사람들간 소통은 원활해 질까요?
독일어엔 전문가 바보(Fachidio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Facharbeiter(전문가) 와 idiot(바보)의 합성어로, 보통 자신의 전공 분야만 알고 다른 분야에 대해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보통 학문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인데요, 미디어 개인 공간이 늘어나는 스마트 시대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바보(Fachidiot)들이 엄청나게 많아질 겁니다. 자신과 맞는 서비스와 정보만을 검색해서 얻어낼 수 있으니, 다양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있을 필요없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즐기면 그만이거든요. 스마트 환경이 관심밖에 일은 신경도 써주지 않게 도와줄겁니다. 원하는 분야에서 풍부한 정보 수집은 가능하겠지만, 다양한 사회 분야를 이어줄 맥락을 잃게 되는 것이죠. 스마트한 기술 앞에 사회 속의 개인의 삶은 더욱 파편화 되가는 것입니다. 사회에 대한 넓은 시야를 지닌 사람이 되기 보다, 자신의 분야에만 빠져있는 우중(愚衆:어리석은 대중)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죠. 곧 사회적으로도 접합(서로 만나서 합해짐)과 통찰의 지혜가 부족해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문제는 사회가 급격하게 보수화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겁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서는 빠삭한 정보를 자랑할 수 있지만 남의 이야기는 조금이라도 들으려하지 않게 되겠죠. 이렇게 개인들이 파편화 된 사회에선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배려하기 힘들어집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쪽이 더 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거기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너와 나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있다"보다 "다른건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방법으로 말이죠.
"기술은 발전하지만 사람은 진보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마트폰의 이용자들은 늘고 있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각축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바뀌어가는 스마트 시대,
더 나은 삶을 위한 시대가 될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기술 자체의 발전이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변화에 달려있는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