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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한국에 오다.

Ozirrap 2011. 2. 19. 23:37

쿵.. 쿵...

"아니, 이렇게나 많이 오시다니"

극이 시작되자마자 관객들을 가로질러 뚜벅뚜벅 걸어오는 이 사람,

헝클어진 머리하며 너저분 해보이는 수염을 정리도 안한채 빈 무대위로 오릅니다.

배경에 비친 자신의 사진이 신기한지 그 포즈를 능청스레 따라해봅니다.

 

 

 


  후불제 연극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그렇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입니다.

격렬한 어조, 신랄한 말투, 불같은 성격..

모두 상상할 수 있는 딱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소개 드릴 연극은
지난 2월 10,11,12일 신촌 낮은 예수마을에서 오후 8시 마다 공연되었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입니다.

 

'청어람 아카데미'가 주최하고 한동대학교 프로젝트 그룹 '탐'에 의해서 꾸며진
이 연극은
미국의 학자이자 사회활동가 하워드 진이 쓴
 희곡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작년, 그러니까 2010년에 타계한 하워드 진은
'미국민중사'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희곡이라니? 그것도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가지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 했었던 하워드 진은, 현대전의 참혹함을 경험하고 전쟁과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며 시민불복종운동을 벌여온 지식인입니다.

 

그런 하워드 진은 공산주의가 멸망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미국에서도 차별·불평등과 부조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죽은 마르크스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죠.

 

극중 당시 미국의 상황들에 대해 쏟아내는 마르크스의 웅변은 마치 생전 하워드 진의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실천적 지식인이라 평가 받는 하워드 진의 모습

 

 

 

 


"그들이 계속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승리 했다구요? 어째서요? 주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주식을 소유한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부유해졌다고 해서? 승리했다고? 미국의 어린이의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며 살고 있고, 그 가운데 4만 명이 해마다 돌도 채 넘기지 못하고 죽는데?"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예술, 문학, 음악, 심지어는 아름다움 자체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간도 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노동자뿐 아니라 의사, 과학자, 법률가, 시인, 화가도 생존하기 위해 모두 자신을 팔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이 아닌 삶을 살면서, 자신이 정말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면서, 그런 삶은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지요!"


"내가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일단 여러분 엉덩이에 뾰루지가 났다고 가정하세요. 그래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면 너무 아파서 당장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은 움직여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한참을 열변을 토하더니 자리에 앉아버립니다.  

목이 마른듯 맥주를 홀짝홀짝 마신 뒤 아내인 예니와 딸 엘레아노르 이야기를 합니다.

 

고향인 독일에서 추방당하고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전전했지만

끝까지 옆을 지켜준 아내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한 딸..

한 가족의 아버지었던 마르크스의 고민과 미안함을 말했습니다. 

 

또한 그런 자신을 끝까지 믿고 도와주었던 엥겔스, 친구이자 원수였었던 바쿠닌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특히 바쿠닌과 생각이 달라 사사건건 충돌했던 일들을 설명할때면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마르크스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극본을 쓴 하워드 진은 '학자' 마르크스보다 '인간' 마르크스를 통해서 지금의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주려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도 하고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친구들을 떠올리고 껄껄 웃곤 하는, 다양한 표정의 마르크스가 무대 위에 되살아 날 수 있었겠지요. 

 

그렇게 마르크스가 살아 돌아온 듯한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 연극이 끝나게 됩니다.

 

이번 공연은 특별히 ‘후불제’로 진행되어 돈이 없어서 못 보는 그런 불상사를 없게 했다는데요. 고인이 된 마르크스와 하워드 진, 두 사람 모두에게 흐뭇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계획된 공연은 모두 끝났지만

국내에서 드물게 시도한 무대인 만큼 나중에 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게 되길 바래봅니다.  

 

끝으로 무대를 내려오며 관객들에게 하는 마르크스의 대사를 씁니다.





"아 여러분들, 이거 하나 명심하세요.. 메시아는 재림하지 못했지만, 마르크스는 이렇게 재림했습니다" 











                                                               -후불제 연극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를 공연했던 신촌 낮은 예수마을 무대-